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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四一九革命) 또는 4월 혁명(四月革命)은 1960년 4월 대한민국에서 제1공화국 자유당 정권이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개표조작을 하자,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에서 비롯된 혁명이다. 3·15 부정 선거의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던 마산 3·15 의거에 참여한 마산상업고등학교 입학생 김주열이 실종된 지 27일 후인 4월 11일 아침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경찰이 쏜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으로 떠오른 것이 부산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격화되었다. 4월 19일 경찰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였고, 발포 이후 시위대는 무장하여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며 맞섰다.
5·16 군사 정변(五一六軍事政變)또는 5·16 군사 쿠데타(五一六軍事 coup d’État)는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961년 5월 18일 정오 무렵까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부평, 수색, 포천 등에서 쿠데타를 목적으로 일어난 유혈 군사반란을 말한다. 주동자는 서울을 관할하는 제6 관구의 전 사령관이었던 박정희로 밝혀졌으며 그는 미국에 의해 지방으로 좌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삼군의 참모총장 몰래 십수명의 장성 및 수십명의 핵심 영관급 장교들과의 사전모의를 통하여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자 하였다. 사전에 참여 병력으로는 김포 공수단 1000여명, 해병 제1여단 1300여명, 6관구 사령부 소속 병력 1700여명,제6군단 포병단 5개대대 3000여명과 제5사단(사단장 채명신 준장이 이끌고 서울 진주), 제12사단(사단장 박춘신 준장과 부사단장 및 작전참모가 이끌고 춘천 진주), 제30사단(부사단장, 작전참모, 헌병부장이 사단 이끌고 서울 진주), 제33사단(작전참모, 연대장 등이 이끌고 서울 진주), 그리고 2군을 비롯한 지방에 있던 여러 장교들까지 수만명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