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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혹은 5·18 민주화 운동(五一八民主化運動),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광주 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후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지속적인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노벨상(스웨덴어: Nobelpriset, 노르웨이어: Nobelprisen, 영어: Nobel Prize)은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작성한 유언을 기려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관련 기관들이 "매년 인류를 위해 크게 헌신한 사람"에게 시상하는, 세계적으로 크게 권위있는 상이다. 1901년에 처음 시상되었으며,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의 5가지 상에 더하여 1968년 제정된 노벨 경제학상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상들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수여되는 반면, 노벨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수여된다.
육군특수전사령부(陸軍特殊戰司令部, 영어: Republic of Korea Army Special Warfare Command, ROK-SWC 또는 Republic of Korea Army Special Forces, ROK-SF)는 대한민국 육군의 특수부대로, 흔히 특전사라고 줄여서 부른다. 3성 장군(중장)이 지휘하며, 검은색 베레모를 쓴다. 대한민국 육군에서 특전사령관은 오랜 기간 동안 오직 육군사관학교 출신만이 임명되는 것이 관행이었으나 제28대 사령관인 남영신(학군 23기)을 기점으로 비(非)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도 사령관으로 보직되기 시작하였으며 제30대 사령관인 소영민 중장 역시 학사 11기로 비육사 출신이다.
2024년 대한민국 비상계엄(2024年大韓民國非常戒嚴) 혹은 12.3 사태(12.3事態), 12.3 내란은 2024년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한국 표준시), 대한민국의 대통령 윤석열이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계엄령을 선포한 직후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의미한다. 윤석열은 이 연설에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국가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협력해 국가를 파괴하고 "입법 독재"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계엄령 선포에 따라 정치 활동, 국회의 활동을 포함해 모든 정치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언론의 자유도 정지되었다.
지강헌 사건은 1988년 10월 8일부터 10월 16일에 걸쳐 지강헌을 선두로 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되었던 25명 중 12명의 미결수들이 호송 도중 호송 교도관들을 흉기로 위협하고 권총을 빼앗아 집단 탈주하여 그 중 4명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일반 가정집에 침입하여 인질을 두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지강헌 일당 중 지강헌은 저격당한 후 학교에서 나머지, 안광술, 한의철은 권총 자살을 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건에서는 원래 탈주범 중 한 명인 강영일이 동생 강영태한테 보내는 편지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쓴다든지, 지강헌은 인질극이 끝나기 직전 두 명의 권총 자살자의 자살을 밝힌 뒤 자신이 좋아하는 록 그룹의 노래를 트는 등의 해프닝이 일어났다. 지강헌 일당은 교도관들이 업무를 소홀히 하자 그 틈을 타 탈출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 인질극을 바탕으로 한 영화 《홀리데이》가 2006년 1월 19일에 개봉되었다.
하나회(壹會, 一會), 또는 일심회(一心會) 또는 신군부(新軍部)는 1963년 전두환, 정호용, 노태우, 김복동 등 대한민국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했던 군대 내의 사조직이다. 이후에는 육군사관학교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회원을 계속 모집하였다. 1979년에는 육사 11기, 12기생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12·12 군사 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항쟁의 탄압과정에도 참가했으며,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