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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은 미국 기업 메타가 운영하는 사진 및 동영상 공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사용자는 인스타그램 앱을 통해 디지털 미디어를 투고하고 해시태그와 지오태깅을 통해 분류할 수 있다. 다른 사용자가 올린 컨텐츠를 태그 및 장소별로 검색해 유행을 관찰하고,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원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해 웹 피드에 불러올 수 있다.인스타그램은 즉석에서 사진을 볼 수 있게 한 방식의 카메라인 ‘인스턴트 카메라(Instant Camera)’와 전보를 보낸다는 의미의 ‘텔레그램(Telegram)’을 합쳐 만든 이름으로, 사진을 손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인스타그램은 본래 2010년 10월 케빈 시스트롬과 마이크 크리거가 공동으로 제작한 iOS 앱으로서 출발했다.
《기생수》(일본어: 寄生獣 기세이주[*])는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작품이다. 고단샤의 《모닝 오픈 증간》에 1988년 F호부터 1989년 H호까지 연재되었고, 그 후 《월간 애프터눈》 1990년 1월호부터 1995년 2월호까지 연재되었다. 단행본은 일반판이 전 10권으로 구성되어 애프터눈 KC에서 발간되었으며, 2003년에는 완전판이 전 8권의 구성으로 애프터눈 KCDX를 통해 발간되었으며, 단행본 누계 판매 부수가 천만 부 이상을 기록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제17회 고단샤 만화상과 제27회 성운상 코믹 부분을 수상하여 비평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이태원 압사 사고(梨泰院壓死事故) 또는 이태원 참사(梨泰院慘事, Itaewon tragedy), 10.29 참사(十二九慘事)는 2022년 10월 29일 22시 15분경(KST),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로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이다. 당시 이태원에는 핼러윈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으며, 해밀톤호텔 앞 좁은 골목길 경사로로 인파가 밀리면서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이 사고는 2003년 192명이 사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와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대한민국 역대 최대 규모의 인명 사고이며, 특히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로는 502명이 사망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처음으로 기록되었다.
이순신(한국 한자: 李舜臣, 1545년 4월 28일(음력 3월 8일)~1598년 12월 16일(음력 11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였으며 한성 출신이었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그 관직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남도수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함경도 동구비보권관(董仇非堡權管), 1581년 발포 수군만호(鉢浦水軍萬戶)가 되었다가 전라남수영의 오동나무를 베기를 거절하여 좌수사 성박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아이언 돔(영어: Iron Dome, 히브리어: כִּפַּת בַּרְזֶל 키파트 바르젤)은 이스라엘 라파엘사와 이스라엘 항공우주 산업에서 개발한 전천후 이동식 방공 시스템(C-RAM)이다. 아이언 돔 시스템은 4 km ~ 70 km의 거리에서 발사되어 탄도가 거주 지역에 도달하게 되는 단거리 로켓과 포탄을 차단, 파괴하도록 설계되었다.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헤즈볼라 등은 이란 및 북한에서 로켓포를 도입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이것을 막기 위해 개발되었다. 근접거리에서부터 최대 70 km 거리에서 발사된 단거리 로켓포와 155mm 포탄을 요격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혹은 5·18 민주화 운동(五一八民主化運動),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광주 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후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지속적인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