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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민주화 운동(五一八光州民主化運動) 혹은 5·18 민주화 운동(五一八民主化運動), 광주민중항쟁(光州民衆抗爭)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조속한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당시 광주 시민은 신군부 세력이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실행한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발생한 헌정 파괴·민주화 역행에 항거했으며, 신군부는 사전에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많은 시민이 희생되었다. 이후 무장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지속적인 교전이 벌어져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5·16 군사정변은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961년 5월 18일 정오 무렵까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인천, 포천 등에서 일어난 군사정변을 말한다. 주체는 서울을 관할하는 제6관구의 전 사령관이었던 박정희 소장이었으며 십수 명의 장성 및 수십 명의 영관급 장교들과 군정을 수립하였다. 참여 병력으로는 공수특전단 1,000여 명, 해병대 제1여단 1,300여 명, 6관구 사령부 소속 병력 1,700명, 제6군단 포병단 5개 대대 3,000여 명과 제5사단(사단장 채명신 준장이 이끌고 서울 진주), 제12사단(사단장 박춘신 준장과 부사단장 및 작전참모가 이끌고 춘천 진주), 제30사단(부사단장, 작전참모, 헌병부장이 사단 이끌고 서울 진주), 제33사단(작전참모, 연대장 등이 이끌고 서울 진주), 그리고 2군을 비롯한 지방에 있던 여러 장교들까지 수천 명으로 전체 국군의 0.5%가 참여한 군사정변이다.
이순신(한국 한자: 李舜臣, 1545년 4월 28일 (음력 3월 8일) ~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忠武)였으며 한성 출신이었다. 문반 가문 출신으로 1576년(선조 9년)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함경도 동구비보 권관(종9품)을 시작으로 훈련원 봉사(종8품), 충청병사 군관, 전라도 발포진 수군만호(종4품), 훈련원 봉사(종8품), 함경남병사 군관, 훈련원 참군(정7품), 사복시 주부(종6품), 함경도 조산보 병마만호(종4품), 전라감사 조방장, 선전관, 전라도 정읍현감(종6품:태인현감 겸무), 전라좌도수군절도사(정3품)를 거쳐 정헌대부(정2품상계) 삼도수군통제사(종2품)에 이르렀다.
하나회(壹會, 一會), 또는 일심회(一心會) 또는 신군부(新軍部)는 1963년 전두환, 정호용, 노태우, 김복동 등 대한민국 육사 11기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했던 군대 내의 불법 사조직이다. 이후에는 육군사관학교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3~4명씩 회원을 계속 모집하였다. 1979년에는 육사 11기, 12기생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12·12 군사 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광주항쟁의 탄압과정에도 참가했으며, 1995년 12·12 및 5·18 사건 재판에서 핵심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김동건(金東鍵, 1939년 11월 25일 ~ )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김동건 아나운서는 현재 KBS 대표 음악 프로그램인 마지막 할 때 까지《가요무대》 진행을 맡고 있다. 가요무대는 1985년 11월 18일에 김동건이 정규 방송 후 초대 첫 진행자 들어가고 임시 진행자였던 우제곤, 왕영은의 뒤를 이어서 진행자로 방송에 나왔고, 2003년 6월 23일에 무려 18년 만에 물러나고 제2대 진행자 전인석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하차했다가 7년 만인 2010년 5월 10일 복귀 이후 현재까지 제3대 MC로 프로그램을 마지막 할 때까지 진행하고 있다.
6.25 전쟁(六二五戰爭) 또는 한국 전쟁(韓國戰爭, 문화어: 조선 전쟁/조국해방전쟁, 영어: Korean War, 중국어 정체: 韓戰/朝鮮戰爭, 중국어 간체: 韩战/朝鲜战争, 러시아어: Корейская война)은 1950년 6월 25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폭풍 작전' 계획에 따라 삼팔선 전역에 걸쳐 기습적으로 대한민국이 침공 당하면서(남침) 발발한 전쟁이다.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뻔 하였으나,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휴전 이후로도 현재까지 양측의 유무형적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12·12 군사 반란(한국 한자: 十二十二軍事反亂, 영어: 12.12 Military Insurrection) 또는 12·12 숙군 쿠데타( - 肅軍 - , 영어: Coup d'état of December Twelfth)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를 위시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 없이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대한민국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김진기 육군 헌병감 등을 체포한 사건이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12·12 군사 반란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켰다.